2018. 3. 19. 16:55 카테고리 없음

고구려의 초기의 국상이자 명재상.

 

을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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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김부식 지음) 따르면 고구려의 제2대 왕 유리명왕 시기의 대신인 을소의 후손이 을파소라고 전해진다.

고국천왕이 외척인 좌가려어비류 등의 세력을 제압한 후에 그동안 외척들의 횡포로 인해 어지러워졌던 내정을 살피히 위해 등용한 인물이었다. 이후로 산상왕 대까지 고구려의 최고 관직인 국상 벼슬을 지내며 선정을 베풀었다.

진대법을 실행한 인물로 유명하지만 왠지 삼국사기를 비롯한 국내 사서의 기록에는 그저 을파소가 '선정을 베풀었다'라고 기록해놓았지 진대법을 직접 실행했다는 구절은 보이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평가 부분에서 확인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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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료 자체가 삼국사기 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

 

고구려라는 자체 사료가 없다.

 

고구려라는 책이 필요하다........

 

 

고구려 초기시절에 을파소가 진대법을 실시한것으로 알려져..

 

암튼.. 을파소라는 이름이 뭔가 인기있어서, 을파소 출판사 등등의 이름으로도 쓰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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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파소의 가장 유명한 업적으로는 진대법을 실행한 것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을파소가 직접 진대법을 시행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을파소가 한창 내정을 이끌때 진대법이 시행되어 진대법의 시행자가 을파소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널리 퍼져서 마치 진대법을 직접 시행한 인물이 을파소인 것 처럼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을파소가 당시에 국상을 지내며 국정을 보살피는 등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기에 진대법을 시행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특히, 을파소는 직접 농사를 지으며 먹고 살았기 때문에 농민들의 문제점 역시 잘 알고 있어 진대법 추진에 큰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 진대법의 내용은 곡식이 부족해지는 봄에 구휼미를 풀어 가을에 약간의 이자와 함께 갚게 하는 것으로, 이는 한국의 역사에서 기록된 최초의 환곡제도에 해당한다. 이 법은 훗날 다른 왕조로 교체될 때까지도 계속 유지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고리대로 변질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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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브룽브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