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28. 12:53 카테고리 없음



1차 갑오개혁의 배경과 과정   (1894년)


우선 1차 갑오개혁의 배경은 전주 화약으로 동학농민군의 대한 고종의 개혁약속으로 인한 내부개혁의 필요성을 느끼로 일본이 경복궁을 습격하여 민씨정권을 붕괴하고 대원군을 섭정으로 하는 일본의 강요때문이였습니다!! 


1차 갑오개혁의 과정을 보자면 흥선대원군을 섭정으로 하는 제1차 김홍집 내각이 주체가 되었고 일본의 태도는 그때 당시 청과의 전쟁을 중요시 여겼기떄문에 소극적인 개입만이 있었습니다!! 


이떄 1차 갑오개혁때 개혁기구로는 군국기무처가 설립됬으며 이떄 개국 연호를 사용하고 의정부와 궁내부를 분리하고 중앙조직을 개편한 다음 경무청도 설치하고 재정의 일원화와 함께 신분제도를 폐지하면서 과거제도까지 폐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차 갑오개혁의 배경과 과정

(1894년 12월 17일 ~ 1895년 8월 24일)


1차 갑오개혁에 이어서 2차 갑오개혁의 배경을 보자면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세를 장악했고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했을때였습니다!!


이때는 1차와 다르게 일본의 적극적 개입으로 흥선대원군이 퇴진하고 군구기무처를 폐지하면서 김홍집과 박영호를 연립내각으로 내새워 개혁을 추진했었습니다!! 


이때 박영효의 권고로 고종이 종묘에 나가 독립서고문과 홍범14조를 발표하고 8아문을 7부로 개편을 하기도 했으며 교육입국조서를 발표하면서 사범학교관제와 외국어학교 관제 그리고 소학교령을 발표했습니다!!


3차을미개혁 배경과 과정  (1895년)


마지막 3차 을미개혁은 삼국간섭이 이뤄지면서 개화파와 친러파의 연합내각이 등장한게 배경이 되었으며 이때 일본이 민씨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 을미사변 발발 배경. 


을미개혁때는 건양이라는 독자적연호를 제정하고 친위대 진위대를 설치하고 2차 갑오개혁떄 발표했던 소학교를 설치함 뿐만이 아니라 태양력 사용, 우편사무확대, 종두법 보급, 단발령 시행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때 단발령때문에 을미의병이 발생하고 여기서 내머리카락을 자를바에 내 목을 쳐라 라는 유명한 명언이 나오기도 했었죠.. 하지만 을미의병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아관파천을 한후로 중단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3가지 개혁에 대한 평가

이 3가지의 개혁들은 봉건적 통치질서를 타파하는 근대적인 개혁이였지만 토지개혁에 대한 의지도 없고 서민들의 고충따윈 없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니 모습이~ 처량하다..~~ 



1895년의 을미개혁(민비 시해사건이후..)


을미태소.....   (을미개혁, 태양력, 소학교.설립. ) 

종두건양......  (종두법, 연호는 건양으로 제정함. )

~~~


ㅠㅠ


니모습이 처량하다..




posted by 브룽브룽
2018. 8. 28. 12:34 카테고리 없음

신라시대 서울인 경주에 설치된 동시의 업무를 관장하기 위해 509년(지증왕 10)에 설치한 관서. [내용] 신라는 469년(자비왕 12)에 경도(京都)의 방리명(坊里名)을 정하여 수도의 행정조직을 정비하였고... , 487년(소지마립간 9)에는 처음으로 사방에 우역()을 설치, 해당 관서로 하여금 관도()를 수리하게 함으로써 교통 도로망을 정비하기에 이르렀다........

수도와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 도로망의 정비는 물자의 수송을 용이하게 하여 사방의 물화()가 수도에 모이게 되었다. 이에 490년에는 서울에 시사()가 설치되어 물화 유통의 편리를 도모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지증왕()대는 권농정책()과 우경()의 장려로 농업생산력이 크게 증대되었다. 또 주·군·현제()의 실시로 지방에 대한 통제력도 점차 강화되어 공부() 수취도 보다 활발해졌다.

5세기 이전의 신라는 재지 수장층()을 통한 공납() 지배가 주요한 재정수입원이었다. 이는 해당 지역의 특산물이나 노동력을 중앙에 복속의 징표로써 바치는 체계였다. 따라서 그 수요가 부족한 경우도 발생하였다. 그러나 5세기 후반 무렵부터는 지배 영역이 확대되고 국가의 일원적인 통치질서가 성립되면서 공납물로 충당할 수 없는 부분은 국가가 관영 수공업을 운영하거나 지방의 수공업자를 동원하여 조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중앙 관부와 관영 수공업장의 물품 수요 때문에 관시()와 관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에 509년에는 기존의 시장을 정리, 개편하여 동시를 개설하고 그 관리감독관청으로서 동시전()을 설치하였다. 동시전은 시장개폐의 시각, 도량형의 사용, 상인 간의 분쟁, 어용상품의 조달, 잉여생산물의 판매 등의 업무를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전의 관원으로는 우두머리인 감() 2인, 대사(: 경덕왕대에 로 고침) 2인, 서생(: 경덕왕대에 으로 고침) 2인, 사() 4인이 있었다. 감은 나마()에서 대나마()까지의 관등소지자가, 대사는 사지()에서 나마까지의 관등소지자가, 서생은 선저지()에서 대사까지의 관등소지자가 임명되었다.

의의와 평가

동시 및 동시전의 설치로 경주는 상업도시적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그 뒤 695년(효소왕 4)에 서시(西)와 남시()가 설치됨으로써 시장기구는 보다 정비되었다.

 


 효소왕때, 서시와 남시가 설치되어서 시장이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posted by 브룽브룽
2018. 8. 28. 12:14 카테고리 없음

"노블레스 오블리주, 말하자면 사회 상류층들이 그런 일들에 더 앞장서서 헌신해야 국가의 공공성이 바로 선다. 그런데 거꾸로 금수저는 군대에 다 빠지거나 좋은 보직으로만 가고 흙수저만 군대 간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 의무인 병역의 의무를 면탈한 사람은 절대 고위공직을 맡아서는 안 되는 게 맞다."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덕일 역사학자가 '노론의 나라'라는 책을 썼다. 조선 시대 세도정치로 나라를 망친 노론세력이 일본 강점기에 친일 세력이 되고, 해방 후에는 반공이라는 탈을 쓰고 독재세력이 되고, 그렇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여전히 기득권으로 남아 있다는 내용이다".

"좀 단순화하긴 했지만, 그들은 스스로 보수라고 자처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사람들이다. 서양의 귀족들은 전쟁에 먼저 출정해 희생을 치렀는데, 우리는 오히려 특권층이 세금도 제대로 안 내고 병역도 피하고, 국가에 대한 기본 의무조차 다하지 않고 특권만 누리는 반칙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껏 진보·보수할 것 없이 개혁이라는 말을 써 왔는데, 지금 필요한 건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다. 내가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정치의 주류(主流)세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1월 18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박정희 시대가 친일 지주세력들이 사회 주류가 되는 것을 어느 정도 종언을 고하게 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그나마 5·16 군사정변이 없었다면 노론(서인)의 세상은 더욱 고착화돼 대한민국을 완전히 좌지우지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역사인식에 있어서 내가 줄기차게 이 블로그에서 주장한 것과 너무나 비슷하다.

300년 동안 주류세력이었던 노론(서인)은 '부패, 무능, 탐욕, 기득권 지키기'로 나라를 망하게 했다. 하지만 반성과 성찰은 없었다. 일제로부터 은사금과 작위를 받았고, 독립운동은커녕 애국지사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다.

그들은 아직도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5만원권 지폐가 율곡 이이 어머니인 신사임당이라는 게 그 상징적 징표 아닐까. 5천원권 지폐의 주인공은 서인(노론)의 종주인 율곡 이이(栗谷 李珥)고, 우암 송시열은 아직도 송자(松子)로 추앙 받고 있고...

보수 궤멸에 큰 책임이 있는 지금의 한국당 모습에서 서인(노론)세력들의 적폐가 어른거린다.

2천년래 제1대 사건을 말하라고 하면, 난 주저없이 '농지개혁법(1949년 6윌)'이라고 말할 것이다.  


<갑오개혁  1894년 갑오 개혁의 한계

토지 제도 개혁 외면, 상공업 진흥·국방력 강화와 관련된 개혁에 소홀>




posted by 브룽브룽
2018. 8. 28. 11:32 카테고리 없음

청원개요

요즘 음주운전이나 무면허 운전으로 인해 많은 인명사고를 내고 있읍니다.
원치않는 사고로 인해 한사람의 인생이 바뀌고 한가정이 풍지박산이 됩니다.
정부에서 다산하라 하지말고 이렇게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해야 할것입니다.
음주사고나 무면허 운전으로 인해 사상사고가 발생하면 어떤경우라도 일벌백계로 엄중하게 처벌하고 더이상 운전을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나만 망하는것이 아니라.
죄없는 타인의 생명과 한가정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행위를 정부에서는 방조하고 독려까지도 했던 것입니다
경축일이나 취임일등이 되면 묻지마식으로 운전면허 취소처분을 사면해주는 행위는 통치행위의 한 면이자 다른한편으로 범죄행위입니다.
무면허 운전 및 음주운전을 하여 사고가 발생하면 엄하게 처벌하고 영원히 면허발급을 받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한다면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 및 무면허 운전으로 인한 사고도 줄어들고 운전운전도 무면허운전도 현저하게 줄어 들것입니다.
아름다운세상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건설을 위하여
꼭 이법안이 개정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357277?navigation=petitions

posted by 브룽브룽
2018. 8. 28. 11:30 카테고리 없음
  • 카테고리

    육아/교육
  • 청원시작

    2018-07-22
  • 청원마감

    2018-08-21
  • 청원인

    naver - ***
고생하시는 청와대 관계자 및 대통령님.
이 글을 꼭 한번만 읽어주세요.
너무나 어리고 여린, 보드랍고 작은 아기가
긴 시간 잔인한 학대를 받다가
극한의 고통속에서 외롭게 죽었습니다.
부디 관심을 갖아주세요.


저는 ‘울산 현대어린이집 성민이’ 라는 사건을
아주 예전에 뉴스에서 봤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에 여러 아동 사망 사건을 계기로 오늘 다시
접하게 되었습니다.

성민이 사건은 두돌도 안된 23개월 영아가
어린이집 원장남편에 폭행에 의해서
장이 끊어져 복막염과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입니다.
저는 단순히 그 날 원장 남편이 화가나서 아이를 폭행하다 심하게 맞아서
사망한 사건으로 알고 매우 안타까워 했었는데
오늘 여러가지 기사와 사연을 보니 너무나
잔인하고 비참하고 이 곳까지 와 글을 적게되었습니다.

성민이의 아버지는 경제 형편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이혼후 두 아들을 혼자 키우기 어려워
울산시 공무원의 소개로 24시간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겼습니다.
성민이 아버지는 지방을 전전하며
일을 다니며 생계를 책임져야했고
돌봐줄만한 친척이 없어서 어쩔수 없이 아이들을
맡겼지만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려와 같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맡겨진 지 3개월만에 아기는
처참한 모습의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여러 정황을 보니 3개월동안 아이는 너무나
잔인하고 잔혹하게 학대를 받았으며 숨을 거두기 마지막
2~3일에는 차라리 즉사하는 것이 나았을 정도로
생지옥의 고통을 느끼며 죽어갔을 것이라고
소아과 전문의들과 부검의는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원장부부의 집에서 24시간을 먹고 자고 했던
그 어린아이를 잔인하게 학대해서 죽였으며
다른 보육교사에게는 ‘성민이가 전염병이 있으니
안아주지 말고 곁에 두지 마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실제 부검결과 성민이는 전염병이 없었습니다.)
원장부부는 성민이가 의지하고 기대고 싶었던 보육교사의 손길을 그렇게 차단해버렸습니다.

또 다른아이들은 식판에 정상적인 식사를 주며
성민이 형제에겐 냉면 대접에 이것저것 섞어서 먹였는데
이것마저 아가는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다네요.
유일하게 학대받지 않는 시간인
보육교사의 근무시간이 끝나고 퇴근하려고 하면
그 어린 아가는 소리도 못내며
눈물만 뚝뚝 떨구었다고 합니다.
잠은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방,
혹은 거실 피아노 밑에서 형제가 부둥켜 앉고 잤으며 원장남편은 인형을 빙빙 돌리다
성민이의 얼굴에 가격하고 수막대(교구, 철제재질)로
폭행했습니다. 밝혀진 것이 이정도인데 아무도 없이
성민이 형제와 그 원장부부만 있는 오후 6시이후부터
그 다음날 보육교사가 출근하는 아침이 올 때까지...
성민이는 어떤 폭행과
어떤 학대와 어떤 대우를 받으며 지냈을까요..

아기가 사망하던 그 마지막 사건은
원장 부부싸움중에 아기가 변을 봤다고
원장의 남편이 아기의 팔을 양쪽으로 벌려잡고
배를 발로 걷어찼으며 울음을 멈추지 않자
잔인하게 발과 주먹으로 아이의 배를 짓이기고
얼굴을 가격하였습니다.
장이 끊어진 아이가 죽도록 우는데도 병원을 데려가지
않고 마트로 데려가서 또 구타 했으며 그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진 정확하 밝혀진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부검의는 아기가 장이 끊어진 후 사망까지는 최소 2~3일
이 걸렸을 것이고 그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웃도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증언합니다. 물만 먹어도 토할것이며
약을 먹였다면 극한의 고통은 몇배가 더 증가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병원에 왔다면, 하루만 일찍 병원에 데리고 왔다면
아이를 살릴수 있었을거라 합니다.

23개월.. 두돌도 안 된 아기입니다.
걸음마는 잘 하지만 아직도 기저귀를 차며
엄마, 아빠 정도를 겨우 말합니다.
아직 반사신경도 느리고 신체동작도 미숙합니다.
피부는 너무나 보드랍고 솜털같구요..
배는 너무나 말랑말랑합니다..
해맑게 웃고 뽀뽀하고.. 손은 어른 손의 1/4만 하며
아주 작고 포동포동합니다..

23개월 아기는
왜 자신이 이렇게 죽도록 아픈지....
왜 매일매일 맞아야 하는지...
왜 아빠는 오지 않는지....
아빠가 너무 보고싶은데.....
아무것도 모른채 홀로 그 고통을 견디며
죽어갔습니다. 오죽하면 의사가 차라리 즉사하는 것이
훨씬 나을 정도의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라 했습니다.
6살난 성민이의 형이 할수 있는 것이라곤
그렇게 숨이 끊어질 듯 우는 동생을
원장부부가 운다고 또다시 폭행할까봐
식탁밑으로 기어들어가 동생을 부둥켜앉고 입을 틀어막고
울음소리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죽어가는 동생을,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생을
달래는 것. 그것 뿐이었습니다.

원장부부의 처벌은
원장(여) 징역 1년
원장남편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 형을 살지 않습니다.
성민이를 직접적으로 죽인 원장 남편은
실제론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미 너무나 오래 된 사건이라 재수사가 어려운 것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아직도 계속 아이들이 학대와 사고로 죽어나가고 있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형량과
심지어 처벌을 받지도 않는
법들은 꼭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원장 부부는 법률상 어린이집 교사 자격증, 운영허가 등을 다시 받을 수 있으며
실제로 사건이 지난 몇년 후 어린이집(혹은 학원)을 차려
운영했다고 합니다.
이미 처벌 받은 사건을 다시
처벌받게 할 수는 없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나라의, 국민의
인식이 꼭 바뀌어야 하고 관련 법을 꼭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적습니다.
또 성민이가 배를 가격당하고 장이 끊어진 그날
숨을 거둔것인지, 그 이후 몇일을 더 살아있다가
사망한 것인지 밝혀져야합니다.
아기의 죽음에 아직도 몇일이란 공백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오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정말 생업을 포기하고 10년을 달려들어도
바꿀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과
너무나 잔인한 아기의 죽음에
비통한 마음 뿐..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통령님, 모든 국민께서 꼭 기억해주고
이 가엾은 생명을 잊지 말아주세요.


http://m.cafe.daum.net/khakimarket/1ECH/64669?q=23%EA%B0%9C%EC%9B%94%20%EC%96%B4%EB%A6%B0%EC%B2%9C%EC%82%AC%20%EC%84%B1%EB%AF%BC&
사건내용과 아버지의 인터뷰

https://blog.naver.com/boonsuck/22024161666
한 블로거의 글


네이버, 다음에
‘울산 현대어린이집’ , ‘23개월 어린천사 성민’
검색하시면 관련 내용이 많습니다.



성민이 아빠의 편지입니다.


< 아들을 잃었습니다. >

가슴시리게 푸르던 지난 5월 아들을 잃었습니다.
아이의 우윳빛 살결과 귀엽고 통통하던 작은몸은 사라지고,
얼굴과 온몸에 피멍이 든 지친 모습으로
어린 아들은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있었습니다.
고사리 같은 여린 손등엔 매질을 막기위한
마지막 생존의 본능에 피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강아지처럼 보드랍고 따뜻하던 나의 아들은
차갑고 참담하게 식어있었습니다.

그 어린 것이 그 작은 것이, 홀로......
지독한 고독속에 홀로......
홀로 공포와 매질을 견뎌야 했습니다.
홀로 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어두운 영안실안에 홀로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두돌이 되던날 미역국도 못먹고
홀로 부검대 위에서 온몸을 찢겨야 했습니다.
홀로 뜨거운 불길속에 불살라지고........
홀로 바람에 흩날려야 했습니다.
그 어린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도 홀로.....
한줌의 재로 사라져가야 했습니다.
성민이는 이제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곳으로 떠났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 5월.......
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뜨겁고 대단하던 여름이 지나고,
태풍을 지나보내고,
많은 비들을 맞아 보내고...
그렇게 이젠 평화로운 가을을 맞이합니다.

평화로운 가을속에 서있는 내 가슴은
성민이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여전히 장마와 태풍이 휩쓰는
무서운 여름의 한가운데 서있습니다.
성민이 재판은 끝났습니다.
재판이 끝난다는건 끝이 아닌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쳐 성민이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둠속에 학대당하며 힘겹게 숨쉬고 있을 제2의 성민이를 구해야 합니다
멈추지 않는 비바람속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이 두 편지는 사건 후 재판과정에서 쓰신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지요..)

성민아 아빠란다.
오늘은 뭘하고 놀았는지.....
아빠는 오늘도 우리 성민이 생각많이 했구나.
우리 성민이 포동포동한 뺨에 손가락 대고
이쁜짓하던 모습도 생각나고
아빠에게 안기며 애교떨던 모습도 생각나고
장난기있는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던 그 모습도 선하다.

성민아

아빠가 성민이한테 해준게 하나도 없어서
너무 미안해

엄마없이 남의 손에 자라게 해서 미안하고
매일매일 부댓기며 같이 자주지못해서 미안하고
매끼니 같이 밥먹어주지못해서 미안하다.
멍들고 지쳐서 아빠를 바라볼때도
아빠는 아무것도 몰라서 정말로 미안하다.

아빠힘든것만 생각하느라
성민이가 얼마나 힘든지 생각을 못해 미안하고
그렇게 아프게 널 보내서 정말로 미안해.
성민아~~~~성민아~~~~~~~
아무리 불러도
니가 다시 웃으며 돌아올수 없다는게
아빠는 너무 가슴이 아프단다.
살고있지만 사는것 같지도않고
그렇게 너를보낸
나 자신을 용서할수 있을것같지도 않다.
하지만 아빠가 우리성민이 이렇게만든
나쁜 아줌마 아저씨 꼭 벌받게할께......

성민이 생일날엔 맛있는것도 사주고
장난감이랑 멋진옷도 사주려고 했는데...
하늘나라에서 아빠랑 만나는 날엔
아빠가 꼭 안아줄께....
우리성민이 목마도태워주고
자전거타는것도 가르쳐줄께....

보고싶은 우리성민아......
우리아들 생각하면 자꾸눈물이 나지만
남자는 원래 씩씩해야 되는거야~~
그러니까 우리성민이도
이제울면 안돼~ 알았지???
그럼 우리착한아들 잘자라.....


posted by 브룽브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