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29. 15:24 카테고리 없음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1997),  


 조선왕조실록(1997),    직지심체요절(2001),    승정원일기(2001),



 해인사대장경판 및 제경판(2007), 



  조선왕조 의궤(2007),

 동의보감(2009), 


일성록(2011),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2011), 난중일기(2013), 


새마을운동기록물(2013),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2015), 


유교책판(2015)




  : 징비록은 기록유산이 아니다....   

posted by 브룽브룽
2018. 8. 29. 15:19 카테고리 없음










서울 성곽은 옛날 중요한 국가시설이 있는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도성(都城)으로, 흥인지문은 성곽 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이다. 흔히 동대문이라고도 부르는데,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 축조때 건립되었으나 단종 원년(1453)에 고친 것으로..... 추정....   


보물1호 - 동대문 -0흥인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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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 


 ⓛ 남대문  (남-숭, 숭례문)     ② 원각사지 10층석탑  ③ 진흥왕 북한산순수비  ④ 고달사지 부도

 ⑤ 법주사 쌍사자석등  ⑥ 중원군 탑평리 7층 중앙석탑  ⑦ 봉선 홍경사 비갈

 ⑧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⑨ 정림사지 5층석탑  
 
 ⑩ 실상사 백장암 3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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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사적1호는? 국보 1호나 보물1호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사적 1호에 와서는 누구나 대답이 막힐 듯 한데 경주의 포석정이 사적지 일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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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3호  -  --  


수원 화성

현재 수원 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 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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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115호  -   수원 화성행궁 화령전 - 사적 제115호 정조대왕은 1789년 10월 아버지 사도세자를 현륭원으로 모신 후 1800년 1월까지 13차례 현륭원을 참배한다.  방문할 때마다 화성행궁에서 머물렀는데 수원부 관아에 장남헌, 복내당, 득중정 어제현판을 내렸고, 지지대 이름을 명명하고 수원부의 이름을 화성으로 개칭하기도 했다. 수원화성 축성기간 중에는 1795년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 회갑을 맞이한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진찬연을 열었고 화성장대에 올라 군사훈련을 지휘하기도 했고 영화역, 관길야, 대유평, 만석거 이름을 명명하고 비석을 세워 기념하기도 했다.  


1800년 6월 정조대왕이 세상을 떠나자 정조대왕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던 화성행궁 옆에 추모의 공간을 만들었는데 바로 화령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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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478호..  - 수원 화성 행궁. 

-2007년 4월 1일 사적 제 478호로 지정된 조선 관아건축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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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브룽브룽
2018. 8. 29. 14:32 카테고리 없음


posted by 브룽브룽
2018. 8. 29. 14:12 카테고리 없음

카지노 설립 계획이 선 것은 1963년. 


그러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첨단 관광 산업을 정부 당국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도박 사업장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4년여가 지난 1967년 인천 오림포스 호텔내에 국내 최초로 카지노가 설립되며 전락원 회장은 경영에 참여하게 됩니다. 철저한 준비와 계획, 전락원 회장의 카지노 경영 아이디어는 풍부했습니다. 카지노 운영은 성공적이었고 오래지않아 머리 회전이 빠르고 손놀림이 민첩한 한국인 딜러들이 양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림포스 호텔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그 이듬해에는 워커힐 호텔에 두번째 카지노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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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국내 첫 ‘외국인 카지노’ 호텔 50년만에 문 닫는다

국내 최초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들어섰던 ‘파라다이스호텔 인천’이 50년만에 문을 닫는다. 1965년 ‘올림포스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해 반세기 지역을 대표하는 호텔로 성장했으나 최근 송도 등 신도시에 특급 호텔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영업 부진을 겪었다.

파라다이스호텔 그룹 관계자는 “올해 2015- 12월까지 영업을 하고 운영을 중단할 예정”이라며 “최근 사업성이 많이 떨어져 경영적인 판단을 했다”고 2015-11-24일 밝혔다. 1965년 객실 43실로 개관한 이 호텔은 인천 최초의 관광호텔이다. 당시 호텔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또한 인천 제1호이며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개관이후 ‘올림포스’는 인천을 방문하는 귀빈들이 이용하는 대표 호텔로 자리 잡았다.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은 기념식수는 아직 호텔 정문 앞에 남아 있다.

개관 3년째인 1967년에는 국내 최초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이 호텔에 들어섰다. 서울의 워커힐호텔보다 1년 빨리 카지노를 유치했다. 2004년 별세한 파라다이스 그룹 창업자인 전락원 회장은 당시 카지노를 통해 막대한 부와 인맥을 쌓았으며 ‘카지노 업계의 대부’로 불렸다. 1960년대 중반 이사 직책을 맡아 올리포스 호텔 경영진으로 참여한 전 회장은 1967년 이 호텔의 공동 대표이사를 맡아 호텔과 카지노 경영을 이끌었다. 이후 2000년 호텔을 직접 인수해 지금의 ‘파라다이스 호텔 인천’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호텔내에 있던 카지노는 2005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인근의 그랜드 하얏트 인천(옛 하얏트 리젠시 인천)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운영 중이다. 호텔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에는 우리나라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숙소로 사용됐다. 이듬해 4월에는 관광호텔 특1급으로 승격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송도국제도시에 특급 호텔이 연이어 건립되면서 구도심에 있는 이 호텔의 영업 실적이 크게 떨어졌다. 지금의 호텔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2017년 개장할 복합리조트 ‘영종 파라다이스 시티’ 직원들의 기숙사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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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산업의 역사 

오늘날의 현대적인 카지노 산업은 1930년대 대공황 탈출의 일환이자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시작되어 전세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원래 카드 놀이를 처음 시작한 것은 11세기 이전의 중국이었다고 알려져있다. 


중국의 한 황제가 궁중의 애첩들을 즐겁게 하기위해 카드 놀이를 발명토록 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14세기에 유럽에 전해져 확산되었고 오늘날의 카드 게임으로 정착되었다.그 뒤 유럽에서 카지노라고 불리우는 장소에서 기업 형태의 '도박'이 행해졌으며, 프러시아 왕국과 프랑스 왕국 등 여러 국가의 왕들이 국가 경영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과세 대상으로 카지노를 허가해주면서 본격 육성되었고 유럽 대부분의 관광지에 이 카지노가 성업을 계속해왔다. 



Casino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집'을 뜻하며 라틴어 'Casa'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귀족들이 사용했던 사교 전용 별관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네바다 사막에 현대 카지노가 생겨나기 전까지 유럽 대부분의 카지노들은 사업 규모나 게임 종류, 그리고 서비스와 경영 기법 등에 있어서 전근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라스베가스에 카지노가 생겨나면서 유럽의 카지노도 새롭게 변모하게 되었던 것이다. 

posted by 브룽브룽
2018. 8. 29. 13:37 카테고리 없음

관광의 개념적 구성요소 :     이동성, 회귀성, 탈일상성 -    - 영리성이 아님.      

posted by 브룽브룽